[한경에세이]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

입력 2015-12-14 18:20  

박종복 < 한국SC은행장 jongbok.park@sc.com >


경미한 사고로 자동차를 정비공장에 맡긴 적이 있다. “수리를 마쳤으니 차를 찾아가라”는 연락을 받고 공장에 갔다. 차는 말끔히 고쳐져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.

그런데 문득 평소 와이퍼 고무가 많이 닳아 빗물이 잘 씻겨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. 차를 내주러 나온 직원에게 “와이퍼 고무만 교체할 수 있느냐”고 슬쩍 물었다. 그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와이퍼 고무를 교체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. 생각보다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. 중간에 몇 번이나 “그냥 그만 두시라”고 했지만, 그 직원은 “아닙니다, 제가 꼭 해보고 싶습니다”고 말하고는 이리 저리 방법을 찾았다.

시행착오 끝에 간신히 와이퍼 고무를 갈아끼웠다. 15분 정도 걸린 듯했다. “괜한 일로 시간을 많이 빼앗아 미안하다”고 직원에게 말하자, 그는 뜻밖에도 “고객님 덕분에 저도 잘 몰랐던 교체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돼 감사드린다”며 되레 인사를 했다.

와이퍼 교체는 정비사에게 넘기면 그뿐이었다. 차량 인계가 주업무니까 말이다. 그러나 그 직원에게 와이퍼 고무 교체는 그의 직업의식을 완성해주는 일종의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. 그날의 일이 아니었다면, 아마 그는 정년퇴직할 때까지 와이퍼 고무 교체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.

은행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종종 본다. 겉으로 보기에 주목받지 않는 업무를 하는 직원들 중에는 “내가 사실 이 일보다 더 중요하고 멋있는 걸 맡겨주면 잘 할 수 있다”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. 심지어 “여기 아니라도 오라는 데 많다”는 식으로 거드름을 피우기도 한다.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정작 그 직원은 오라는 데가 없다. 오히려 사소한 일을 맡겨도 열과 성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는 직원은 여러 부서장이 서로 데려가려 한다.

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 같다.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그저 자기 일에 대한 보상이나 명성만을 좇는다면 그는 참 천한 일꾼이다. 얼핏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을 해도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, 그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는 귀한 직업이 된다. 또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장인이 될 것이다. 조금 더딜 수는 있지만 명예와 부도 반드시 따라온다.

박종복 < 한국SC은행장 jongbok.park@sc.com >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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